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S. 패튼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호평과 악평이 교차하지만, 어쨌든 그는 '''전차를 이끄는 지휘관들의 모범이 된 [[명장]]'''이고, '''극도로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[[맹장]]'''이었다. 그래서 '''진정으로 미국스러운 장군'''이라고 평하기도 한다.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막무가내로 나갔던 행보 덕분에 시대를 잘못 선택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한다. 차라리 19세기 [[프로이센]]의 [[기병]] 장군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거라고. 조지 패튼은 철저한 군인이었다. 병사들 뿐만 아니라 하위 장교들과 자기 자신을 포함한 장성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북아프리카 전선의 추축군을 제압했고,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해방시켰다. 이후에는 [[아르덴 공세]]마저 철저히 분쇄함으로써 독일의 전략적인 군사 전개 능력을 완벽히 파괴해버리는 등, 군사적 능력은 굉장히 탁월했다. 그러나 '''푸른 눈의 [[쇼군]]'''이란 별명까지 있을 정도로 [[정치가]]로서의 면모도 가졌던 [[명장]]인 [[더글러스 맥아더]]와 달리[* 맥아더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된 것은 [[한국전쟁]]으로, 당시 대통령 [[트루먼]]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[[만주]]에서의 중국과 전면전 계획을 짜고, 아예 대통령이 맘에 안 든다고 [[야당]] 대표와 손 잡고 트루먼을 물먹이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[[문민통제]]를 따르지 않는 위험성 때문에 몰락했다. 반대로 말하면 일개 군인이 문민통제 끝판왕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야당과 손을 잡고 대통령마저 물먹일 수 있는 정치력을 가졌다는 소리기도 하다.] 전쟁이 끝나자마자 전후 독일 미 군정에서 나치 당원들에 대한 아무런 조사 없이 채용하거나 전쟁 당시 연합이었던 소련에 대한 호전적 발언을 아끼지 않고 도리어 친나치적인 행보를 보이는 큰 실책으로 해임당하는 등, 정치적 능력은 지나치게 호전적이고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. 결국 이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장 미군에서 해임당하였으며, 쓸쓸한 노년을 보낼 틈도 없이 1945년, 전쟁이 끝난 바로 그 해에 사망했다. 미 육군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개발된 [[M46 패튼|M46]]과 [[M47 패튼|M47]], [[M48 패튼|M48]] 전차에 그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공로를 기렸다.[* 기술적으로 M48의 발전형인 [[M60 전차]]에는 공식적으로 패튼이라는 이름이 붙은 적이 없다.] 워낙 유별난 지라 [[아돌프 히틀러]]조차 그가 참전하기 전에 성격 등을 알고 있었으며 '''"카우보이 장군"'''이라고 불렀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